Food/엔지니어66

[스크랩] 사연이 있는 `강된장 찌개` 이야기

파도아래 구름위 2007. 6. 24. 21:08



오늘은 글을 안 올릴려고 했어요.
그런데 강된장찌개 간을 보다가 혼자 먹기 아까와서 그냥 카메라 셧터 눌렀습니다.
강된장찌개에 사연이 있기때문이죠.




비록 규모는 손톱만큼 작지만, 사업을 하던 남편을 만나 결혼한 초창기는 경제적으로
정말 어려웠어요.
12년동안 안정된 조직(회사)의 보호아래서 편안한 월급쟁이 노릇을 하던 제가,
사업하는 남편을 지켜봐야 하는 건 정말 낯설고 불안하고...그랬지요.

어느날, 남편의 전화가 그날따라 고장이 나면서 여러거래처에서 5명의 사람들이
집으로 들이닥쳤어요.  돈 받으러.... 남편하고 연락이 안 되니까 온 거에요.
TV에서나 보던 낯선 상황을 저 혼자 겪으니 두렵다가 나중에는 정말 냉정해지더군요.
사람이 최고조의 공포를 느낀 다음에는 아주 냉정하고 이성적이 된다는 걸 그때 깨달았지요.

마침 저녁시간이었지요.
남편은 아직 안 들어오고 화가 난 낯선 사람들이 우리집에서 남편 올때까지 기다리겠다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제가 말도 붙이지 못할 정도로 분위기가 냉랭했는데 제가 습관처럼 '저녁식사들은
하셨냐'고 물으니 '지금 밥이 문제가 아니다'며 식사를 안 하겠다고 하시대요.

그래도 저는 집에 오신 손님들이기 때문에 일단 밥을 앉히고 제일 빨리 할 수
있는 강된장찌개를 했어요. 아기를 포대기에 업고요.
그 순간에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따뜻한 밥 한끼 드리는 것 뿐이었지요.
된장에 멸치,새우,버섯가루등을 넣어서 정성껏 끓였습니다.

반 가른 멸치와 고추장, 김치 2가지, 강된장찌개, 따끈한 밥만으로 상을 차렸는데
밥을 안 드시겠다던 그 분들이 된장찌개 냄새에 마음이 달라지셨는지 식사를 하셨어요.
밥을 먹으면서 살벌한 분위기도 풀어지고  그 분들 마음도 어느 정도 부드러워지셨어요.
거기다가 제가 아끼던 차(茶)까지 우려서 몇 잔씩 드렸지요.
그리고는 '밥하고 차, 잘 먹었습니다. 우리 다녀갔다고 ㅇㅇ(제 남편)에게 전해주세요'라며
그냥 가셨어요.  허무하게시리....
몇 분은 된장찌개 어떻게 끓였냐고 묻기도 하셨지요.


믿지 못하시겠지만 사실이에요.

그래서 저는 따뜻한 밥 한끼가 사람 마음을 달래주고 변하게 한다는 걸 믿는 사람이에요.
그 후에도 아주 심각한 상황이 몇 번 있었는데 참 허무하게 쉽게 해결이 되어 버리는 일들이
종종 있었지요.
얘기를 하려면 끝도 없어서 여기까지만 하지요.


그리고 집에 오랫동안 돈이 없어도 쌀과 된장과 고추장만 있으면 정말 든든해요.
멸치가루,버섯가루,새우가루도 늘 준비해 둡니다.
제가 이런 생활에 아주 길들여져서 이제는 더 이상 초인종 소리도 두렵지 않고
전화벨 소리도  아무렇지도 않게 들립니다.
저도 나름대로 여우가 아닌 늑대가 다 됐지요.^^


그때 어려웠던 상황들은 2년전에 다 해결했지요.
그리고 저는 남편에게서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의 협상(?)을 잘 이끌어 내는 법을
배우기도 했어요.

금세기 최고의 협상가 '허브 코헨'의 '협상의 법칙'이라는 책도 협상에 관한한 최고지만,
저는 남편과 같이 겪으면서 남편이 주눅들지 않고 그 사람들과 대처하고 해결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남편이 아닌 같은 인간으로서 정말 소중한 것을 배웠어요.
냠편하고 6년 넘게 살고 있지만 그 힘든 시절에도 서로에게 생채기 한 번 안 내면서 살았네요.


그때 그 사람들 입맛을 사로잡은 강된장찌개를 오늘은 이렇게 끓였어요.
뚝배기에 된장넣고 멸치가루,새우가루,버섯가루를 넣어서 쌀 뜨물 넣고
잘 푼 다음 끓여요.
멸치국물을 넣은 것보다 가루들을 넣은 게 맛이 더 진하고 구수하고 좋아요.
매운고추와 달래를 듬뿍 넣었고요, 양파도 작은 거 반쪽과 다진마늘 반큰술.
고추가루 1큰술을 넣어서 얼큰하고 구수하고...너무너무 잘 먹었습니다.
정말 더 이상 표현을 할 수 가 없네요.^^

가루들을 넣으면 거품이 정말 많이 나요.
그럴때는 처음부터 걷어내지 마시고 끝까지 일단 그냥 이것저것 넣고 끝까지 끓이세요.
그러면 나중에 모든재료들은 다 가라앉고 진짜 거품만 떠 있어서 거르기가 편해요.
처음부터 거품을 걷다보면 가루들도 다 걸러져서 찌개가 맛이 없어져요.

이 된장찌개는 누구보다도 제 남편이 더 좋아하는 거랍니다.

오늘 이걸 오랜만에 먹으면서 옛날 생각을 해봤어요.



출처 : 살아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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